::::꽃들에게 희망을::::
 
 
 
 


  설미정(2010-10-13 17:37:31, Hit : 1300, Vote : 73
 10/14, 그녀는 항상 ‘엄마’였다


   97년인가 98년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을 가르치던 민들레공부방에서 그녀를 처음 봤습니다.
푸근한 인상에 아이들의 요리조리 챙겨주던 모습, 10년도 훨씬 지났으니 지금보단 젊었을 때의 모습이지요. 그땐 전 자원교사로 최선생님은 실무자로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번 공부방 가는 날이 유쾌했다는 기억이 납니다. 간식을 손수 만들어 아이들을 챙겨주고 학습부진으로 학교에서 놀림을 받는 아이들을 안아주고 달래주고 때론 엄격히 학습을 지도하고 평범한 가정의 엄마역할을 하셨답니다.

그 후 선생님은 보호관찰소로 가셨는데 거기에서 활동하시면서 안타까운 상황의 청소년들을 만나게 되면 온 사방에 수소문하여 그 청소년에게 경제적 정서적 지원과 지지를 갈수 있도록 이끌어 내셨답니다. 저도 이때 보호관찰소의 청소년들을 알게 되었고요, 한쪽에 치우쳐있는 저의 시각을 깨우쳐 주셨답니다.
항상 그녀와의 대화는 정겹고 만나면 무엇이라도 챙겨주려는 마음가짐에 사람 섬기는 진정성을 엿보게 되었답니다. 선생님 덕분에 저희 단체는 보호관찰소 청소년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그 후 마야에 근무하는 지금도 교복지원, 물품지원 등을 함께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딱 반발자국 앞서 나가면서 주위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저렇게 살아도 되겠구나 라는 모습을 실천으로 보여주십니다. 저희 단체와 마야가 한동네에 있기 때문에 가끔 마야를 방문하는데 어찌나 아이들과 허물없이 대하는지 그리고 이것저것 살갑게 챙기던지 거칠게 생활했던 정에 굶주렸던 아이들이 덩달아 포근해지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답니다.
집을 나온 후 거리를 배회하다 혹은 부모의 폭력을 피해 마야에 오게 된 저마다 마음의 상처를 가진 아이들에게 상담도 훈계도 아닌 안아주기를 먼저 한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막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안아주고 그 다음 행동은 간식을 챙겨서 내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처럼.
가만 생각해보니 그녀는 ‘엄마’였습니다.
포근하다고 맏언니 같다고 마치 친정에 온 느낌이라고 느꼈던 그 감정이 엄마였네요. 마치 엄마 같다가 아니라 엄마였네요.
10여년 동안 최선생님을 알아오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이 감정의 표현을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그녀는 빈민공부방의 아동들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듬지 못한 보호관찰소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마야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가족의 청소년들에게 엄마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에서 배우는 후배들이나 자원봉사자에게도 멋진 엄마이고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런 그녀가 곁에 있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자석^^
10/12, 아들만 아홉 두신 어느 할머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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